[이 글은 어느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...^^]


“내가 창피해?”

동갑내기 아내에게 얼마 전부터 제가 묻는 말입니다.

이주 전 옆머리 삐침에 고민하는 저에게 아내가 파마를 권했습니다. 예전에도 해본

경험이 있기에 못 이기는 척 일요일 오후 아내의 손에 이끌려 동네 미장원에서 파마를

했습니다. 동네 파마란 게 자리 잡기까지 늘 그렇듯 삐침은 해결이 됐는데 가득 큰 머리가

더 커 보이는 풍성함과 뽀글거림은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.



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머리는 영 자리를 잡지 못하고 고 1 딸아이의 데프콘이라는

놀림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아내가 조언을 해줬습니다.

“미장원 아줌마가 너무 센스 없이 머리를 밑에까지 말아놔서 더 곱슬 거리니까 옆머리랑

뒷머리를 쳐올리면 그래도 좀 나아지겠는데....”

이런 아내의 조언에 무심코 저도 한마디 했습니다. 이 한마디가 20년 차 부부 사이에서

며칠간 미묘한 분위기를 만들 줄을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.

“그럼 당신 다니는 미장원에서 다시 깎으면 되겠네.”



아내가 다니는 미장원은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번화가에 있는 아내가 몇 년째 단골로

다니는 미장원입니다. 흔히 말하는 매니저가 있고 뭐 실장이 있고 그런 미장원입니다.

그렇다고 고급스러운 곳은 아니고 그냥 동네 미장원보다 규모가 큰 그런 곳입니다.

선 듯 그렇게 하자고 대답할 줄 알았던 아내가 잠시 뜸을 들였다 입을 열었습니다.

“어....거기 예약해야 돼....손님 많아 당신 미장원에서 기다리는 거 싫어하잖아...”

“지금 바로 간대? 예약해....내일 저녁이나 가지 뭐”

저의 바로 이어지는 대답에 아내가 다시 뜸을 들이다 목소리 톤이 높아졌습니다.

“아니 뭐 동네에서 하지 뭐 머리 깎는데 거기까지 나가.... 그냥 하던 데서 해”

괜스레 목소리를 높이는 아내가 웃기기도 해서 한마디 던졌습니다.

“혹시 내가 창피하냐?”

“뭐가 또 창피하고 그러겠어? 뭐 내놓고 자랑할 얼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창피하기까지는........”

말꼬리를 흐리는 아내의 머리를 잡고 헤드락을 걸고 나서야 예약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.



그렇게 또 며칠이 흐르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가다 마침 옆에 있는 미장원을 발견했습니다.

“맞다 여기지? 당신 다니는 미장원? 마침 잘됐네. 나온 김에 깎고 가게 예약 좀 해놔

장 보고 가지 뭐”

그런데 아내가 장을 보면서도 연신 물어봅니다.

“진짜 가게? 마누라 다니는 미장원 가는 거 안 창피해? 자기 미장원 가는 거 싫어하잖아?

그냥 동네 가서 해”

아내의 계속되는 회유에 저는 밀던 카트를 멈추고 한마디 했습니다.

“사실 나도 갈 마음 없는데 당신이 자꾸 이러니까 일부러 가겠다고 한 건데....말이라도 함께

가자고 안 하니까 이제 좀 서운해지려고 하는데...”



그렇게 별거 아닌 일에 저희 중년 부부는 며칠 미묘한 갈등을 보였습니다. 그러고 다시 며칠이

흘러 집에서 아내와 간단한 안주에 술 한 잔을 했습니다.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내가

아무래도 미장원 일이 맘에 걸렸는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.

“저기 저번에 미장원...그거 정말 서운했어?”

장난으로 삐진 척했다는 제 말에도 아내는 술기운에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 말을 이어갔습니다.

“자기야...여자들은 그런 게 있다....나이가 들수록 뭐랄까 자기만의 영역이랄까...누구 엄마

누구 아내가 아니라 오롯이 나 자신으로만 불릴 수 있는 곳...그렇다고 내가 미장원에서

뭐 과장을 한다거나 거짓말을 한다는 건 아닌데 뭐 매니저나 이런 여자들끼리 얘기하다 보면

이런저런 집안일도 이야기하게 되고 남편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게 되고 애들 이야기도 하고

또 때로는 시댁 이야기도 하게 되고 그러는데...여자들은 그래...남자들하고 달라서

친구들끼리도 서로 가릴 거 가리고 얘기 안 할 거 안 하고 하물며 미장원 같은 데서는

더 그러겠지..그렇다고 정말 당신 말처럼 뭐 창피해서 안 데려가고 그런 거 정말 아니야

내가 뭐 당신이 뭐가 창피하겠어? 안 그래? 우리 이런 잘난 남편....그냥 그 공간이란 곳이

나만의 공간이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그런 거니까 너무 서운해 하지 마.”

주저리주저리 말을 하는 아내에게 소주 한잔을 따라줬습니다.

“그냥 장난으로 말한 거 가지고 뭐 그렇게 말이 길어... 별거 아닌 일에 며칠 당신 맘 안 좋았구나?

내가 미안하네. 그런 마음조차 이해 못하는 속 좁은 남편 아니다.”

저의 다독임에 눈물 많은 아내가 괜히 코까지 빨개지며 소주 한잔을 홀짝였습니다.



그렇게 며칠 애들 같은 중년 부부의 사소한 다툼이 막을 내리는가..............싶었는데

자율학습을 마치고 고 3 아들 녀석과 고1 딸아이가 들어오면서 조용했던 집안이 잠시

소란스러워 지나 싶더니 하나, 둘 아내와 제가 있는 식탁으로 모여들면서 아내와의

오붓한 술상은 아이들의 간식 타임으로 변해갔습니다. 그런데 한참을 정신없이 먹던

아들 녀석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습니다.

“맞다 엄마, 나 내일 자율학습 없는 날이니까 머리 깎게 예약 좀 해줘요”

이 말에 아내는 술기운이 완전 올라왔는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

“웅 아들 몇 시? 7시? 8시? 엄마가 매니저 누나한테 말해 둘게”

막잔하려고 들었던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전 아들 녀석에게 물었습니다.

“지금 엄마 다니는 미장원 얘기하는 거냐? 너 거기서 머리 깎냐?

“네....거기 실장 누나가 나 되게 좋아해요. 엄마 닮아서 예쁘게 생겼다고..하...하...하”



아들 녀석의 가식적인 웃음소리가 귓가에서 사라질 때쯤 좀 전에 오롯이 내 공간이고

싶네! 어쩌니 하는 아내의 말이 떠올라 아내의 얼굴을 빤히 봤더니 뭔가 어색한 분위기를

감지했는지 황급히 일어나는 아내를 자리에 다시 앉히고 마지막 퍼즐을 맞혀 보려고

했습니다. 그 마지막 퍼즐을 다름 아닌 아까부터 말 한마디 안 하고 이것저것 주어먹으며

먹방을 선보이고 있는 딸아이였습니다.

“송이야...혹시 너도 엄마 미장원 가냐?”

먹을 거 다 먹었는지 부른 배를 두드리며 딸아이가 대답했습니다.

“난 엄마가 안 데려가던데”

마지막 퍼즐이 맞혀졌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습니다.

“송이야...네 17년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뭐라 그랬지?”

딸아이가 뭐 당연할 걸 묻냐는 듯 냉큼 대답합니다.

“아빠 닮은 거”

딸아이의 확신에 찬 대답에 마지막 퍼즐을 껴 맞추며 어느새 안방 문을 향해 달려가는

아내에게 외쳤습니다.



“아줌마~~~~우리가~~~~ 창피하냐!!!!”











* 흔한 말로 더럽고 치사해서 전 다음 날 회사에서 가까운 미장원에 들렀습니다. 직장이

강남이다 보니 평소 같으면 쳐다도 안 볼 그런 헤어샾에서 어색하게 앉아서 머리를

깎았습니다. 매니저란 분이 권해준 애들이나 한다는 투블럭 머리를 하고 그날 저녁 집에서

저와 똑같은 투블럭 머리를 하고 온 아들 녀석과 마주쳤습니다. 아들 녀석이 제 머리를

보더니 사진을 찍습니다. 그리고 이런 말을 합니다.

“와~~친구들한테 보내야지 우리 아빠 두블럭 머리하고 다닌다고 자랑해야지~~~~”

19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공부시키면서 단 한 번도 아빠가 자랑스럽다는 말을 못 들어

봤는데 투블럭 머리하고 왔더니 아빠가 자랑스럽답니다..........젠장.......


Posted by 잠이깬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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